2025년 회고
많은 일이 있었다
올해를 돌아보면 "참 많은 일이 있었다"는 말밖에 안 나온다. 기술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좋은 일도 있었고, 힘든 일도 있었다.
회고를 쓰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는데, 머릿속에서는 "작년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 올해 일이었다. 5월에 있었던 일도, 여름에 새벽까지 코드를 붙잡고 있던 것도, 새 팀원을 뽑았던 것도.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하나씩 정리해보려고 한다.
5월, 빈자리
작년 1월에 이 회사에 입사했다. 입사 계기가 된 분이 있었다. 그분을 보고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많이 배웠고, 기술적인 것뿐만 아니라 일하는 태도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영향을 받았다. 생각보다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런데 올해 5월, 그분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와 방향성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솔직히 힘들었다. 막막하기도 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나도 따라서 이직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잠깐 스쳤다.
그런데 고민 끝에 다짐했다. 그분의 빈자리를 내가 채우겠다. 팀에서 그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게 하겠다. 그게 올해 나의 목표 중 하나가 됐다. 지금 돌아보면, 그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한 것 같다. 완벽하진 않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이 성장했다.
고향사랑기부
올해 고향사랑기부 서비스를 전담했다. 사용자 서비스부터 어드민 시스템, Toss/KB Pay 같은 외부 플랫폼 연동까지. 1년 전만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서비스를 혼자 책임지게 될 줄은 몰랐다. 돌아보면 정신없이 달려온 것 같다.
어드민은 새로운 기술 스택으로 설계부터 시작했다. React + Vite + TanStack Router 조합으로, 기존에 쓰던 Next.js와는 다른 접근이었다. 새로운 스택을 프로덕션에 도입하는 건 항상 리스크가 있지만, 이번에는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했다. 권한 관리, 정산, 대시보드 등 복잡한 요구사항이 많았는데, 팀원들과 함께 하나씩 만들어갔다.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운 구조가 나왔다.
Toss 연동은 혼자 전담했다. OAuth부터 WebView 처리, 결제 완료 플로우까지. 작년에 KB Pay 연동을 했었는데, 그때도 꽤 힘들었다. 그 경험이 있어서 Toss는 상대적으로 수월할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플랫폼마다 정책이 다르고, 예상치 못한 엣지 케이스가 항상 나온다. 그래도 두 번 해보니까 패턴이 보인다. 이제는 외부 연동이 그렇게 무섭지 않다.
새벽 7시, 찜질방
솔직히 올해 힘들었다. 특히 상반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고향사랑기부 결제 오픈 전날이었다. 지로를 통해 결제 연동을 했는데 (수수료가 무료라서), 웹과 웹 사이에서는 잘 동작했다. 아이폰도 문제없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 앱과 웹 사이 통신에서 문제가 터졌다. 지로는 웹을 통해야만 하는데, 앱에서 웹으로 넘어가는 과정이 안드로이드에서만 안 됐다.
오픈 전날 밤, 진짜 엄청난 싸움을 했다. 코드를 고치고, 테스트하고, 안 되고, 다시 고치고. 그 과정을 수십 번 반복했다. 새벽 7시까지 개발하고, 회사 앞 찜질방에서 2시간 자고, 다시 출근해서 일했다. 찜질방에서 눈 감으면서 "이게 맞나?" 싶었다. 그런데 결국 해결했고, 오픈도 성공적으로 했다.
지나고 보니 그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든 것 같다. 안 되는 문제도 결국 풀린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버틸 수 있었던 건 좋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5월에 했던 다짐. 빈자리를 채우겠다는 그 마음도 나를 버티게 해줬다.
팀원 채용
올해 프론트엔드 팀원 2명을 뽑았다. 내 손으로 직접.
원래 프론트엔드는 나 포함 2명이었다. 지금은 5명이 됐다. 1년 사이에 팀이 꽤 커졌다. 돌아보면 신기하다.
면접관 경험이 처음이었다.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면접 전날 밤에 질문 리스트를 만들고, 어떤 대답이 좋은 대답인지 기준도 세워봤다. 기술만 보는 게 아니라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지, 성장 가능성이 있는지도 봐야 했다. 생각보다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좋은 분들을 모셨다. 지금 함께 일하고 있는데, 팀 분위기도 좋아지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졌다. 면접관 경험 자체도 큰 성장이었다. "좋은 개발자란 뭘까?"를 계속 고민하게 됐다. 남을 평가하려면 나부터 정리가 돼야 했다. 내가 어떤 개발자인지, 어떤 개발자가 되고 싶은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앱 개발
작년 중순부터 앱 개발에 관심이 있었다. 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CTO님이 혼자 앱을 담당하고 계셨는데, 다른 업무도 많으셔서 부담이 커 보였다. 프론트엔드 영역으로 가져와서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앱에 대한 요구사항이 들어오면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반영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웹만 하다 보면 앱 쪽 요구사항은 항상 다른 사람 손을 거쳐야 했는데, 그게 아쉬웠다.
올해 드디어 기회가 생겼다. 팀원 2명을 새로 뽑으면서 여유가 생긴 덕분이다. 직접 뽑은 팀원들 덕분에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게 된 거라 더 의미 있었다. 새로 들어온 팀원 한 분과 함께 React Native로 앱 개발을 진행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새로운 영역이라 걱정도 됐지만, AI 덕분에 학습 속도가 빨랐다. 모르는 것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앱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말한 게 헛되지 않았다. 기회는 기다리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라는 걸 다시 느꼈다.
AI와 함께한 성장
많은 사람들이 AI를 두려워한다. "개발자 필요 없어지는 거 아니야?" 주변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올해 성장 속도가 확실히 빨라졌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앱 개발도 그렇고, 새로운 영역을 공부할 때도 그랬다. AI가 없었으면 훨씬 오래 걸렸을 일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었다. 두려워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맞다고 느꼈다.
CTO님이 정책 관련 AI agent를 만들고 계신다. 나도 관심이 많았다. 카카오브레인에서 LLM 관련 프로젝트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AI 쪽은 계속 눈여겨보고 있었다. 하고 싶다고 어필하고, 관련 지식을 학습했다. 벡터DB를 공부하면서 하루 만에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봤다. 직접 해보니까 이해가 훨씬 빨랐다.
방향의 중요성
AI를 활용하면서 개인적으로 생각이 바뀐 게 있다.
예전엔 "글을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AI가 글을 잘 써준다. 그럼 뭐가 중요한가? 방향을 정하는 생각이다.
벡터DB를 공부하면서 더 확실해졌다. 벡터DB는 의미의 방향을 저장한다. 좋은 질문, 좋은 맥락을 주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내 생각의 방향이 명확하면, AI든 팀이든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다.
AI 시대에 중요한 건 도구를 잘 쓰는 것보다, 어디로 갈지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이게 올해 가장 크게 배운 것 중 하나다.
팀
올해 프론트엔드 팀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개발자로 일하다 보면 누구나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나도 그랬고, 팀원들과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했다.
"뭘 하고 싶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걸 위해 뭘 하면 좋을까요?" 계속 물어봤고, 지금도 고민 중이다. 답을 주는 게 아니라 같이 찾아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솔직히 나도 정답을 모른다. 하지만 혼자 고민하는 것보다 같이 고민하는 게 낫다고 믿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새로운 방향이 보이기도 한다.
혼자 성장하는 것보다 같이 성장하는 게 좋다. 팀플레이어로 성장하고 싶다. 내가 성장하면 팀이 성장하고, 팀이 성장하면 나도 성장한다. 이게 올해 배운 것 중 하나다.
프론트엔드에서 엔지니어로
올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됐다. "나는 프론트엔드만 좋아하는가?"
프론트엔드를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고, 지금도 좋아한다. 사용자가 직접 보고 쓰는 화면을 만드는 게 재밌다. 버튼 하나, 애니메이션 하나에도 신경 쓰는 게 성격에 맞는다.
그런데 올해 앱을 하고, 벡터DB를 공부하고, 인프라를 이해하고 싶어지면서 뭔가 달라졌다. "프론트엔드 개발자"라는 정체성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프론트엔드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백엔드도 궁금하고 인프라도 궁금하다. 전체를 이해해야 더 좋은 프론트엔드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이제는 "엔지니어"로서 더 성장하고 싶다. 프론트엔드는 출발점이었고, 앞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 자체가 올해의 큰 변화인 것 같다. 내년에는 어떤 새로운 영역을 탐험하게 될지 기대된다.
2026
내년 목표를 정리해봤다.
- 엔지니어로서 영역 확장 — 백엔드, 인프라 쪽을 더 이해하고 싶다. 프론트엔드만 아는 개발자가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다.
- 팀원들과 함께 성장 — 혼자 잘하는 것보다 같이 잘하는 게 더 가치 있다. 팀플레이어로서 더 성장하고 싶다.
- 테스트 코드 습관화 — 솔직히 올해는 테스트를 많이 못 썼다. 내년에는 습관으로 만들고 싶다.
- 영어 기술 문서 원문으로 읽기 — 번역에 의존하지 않고 1차 정보에 빠르게 접근하고 싶다.
- 건강 관리 — 올해 무리한 적이 많았다. 찜질방에서 2시간 자는 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좋아하는 방향으로 계속 가려고 한다. 힘들어도 계속한다. 혼자보다 같이.
2025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2026년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