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에서, 하나
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반년 전에 회고를 썼다. 첫 문장이 "참 많은 일이 있었다"였다. 그게 한 해를 정리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새 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이번엔 1년이 아니라 반년 만이다. 반년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그때의 나는 면접을 직접 봐서 팀원을 뽑았고, 프론트엔드가 다섯 명까지 늘어난 이야기를 자랑처럼 적었다. 먼저 떠난 그분의 빈자리를 내가 채우겠다고 다짐했고, 어느 정도는 채웠다고 했다. 내년이 기대된다며 글을 맺었다.
그 글을 다시 읽으면 조금 멋쩍다. 그때 나는 "혼자보다 같이"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반년 뒤의 나는, 다섯이 하나가 된 이야기를 쓰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희망퇴직이라고 했다. 하지만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다. 신청한다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안 한다고 남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상자 명단은 안에서 이미 정해지고 있었다. 이름만 희망퇴직인, 사실상 정해진 이별이었다. 그게 두 번 있었고, 두 번 다 갑자기였다.
그날 아침, 타운홀에서 처음 들었다. 앞쪽 큰 스크린엔 글자가 가득했는데, 내 눈에 박힌 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의 비율이었다. 그 순간 들린 거라곤 내 심장 뛰는 소리와 정적뿐이었다. 그 장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발표가 끝나고, 그 자리에서 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순간엔 울지 않았다. 멍했다. 그날 저녁 회식 자리에서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눈물이 났다. 회사에서도, 친구들 앞에서도 좀처럼 울지 않는 사람인데. 울면서 알았다. 회사 스트레스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컸다는 걸.
내 옆자리에는 오랜 준비 끝에 우리 회사에 막 합류한 분이 있었다. 아이를 가진 예비 아빠였다.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희망퇴직 대상이 됐다. 어깨가 작게 들썩이고, 조용히 눈물을 계속 닦으셨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못 본 척도 했다.
회사가 사람을 내보내는 건 무서운 일이다. 머리로 아는 것과 옆 사람이 우는 걸 보는 건 완전히 달랐다. 숫자로는 "몇 명 감원"이지만, 자리 하나하나엔 저마다의 삶이, 누군가의 가족이 앉아 있었다.
다섯에서, 하나
반년 전 글에서 나는 프론트엔드가 "나 포함 두 명에서 다섯 명이 됐다"고 적었다. 1년 사이에 팀이 커졌다고, 신기하다고 적었다.
지금 프론트엔드는 나 혼자다.
3월, 첫 번째로 다섯이 셋이 됐다. 그리고 몇 주 뒤, 두 번째로 셋이 하나가 됐다. 그렇게 혼자 남았다. 내 손으로 면접 보고 모셔온 분들도 그 안에 있었다. 면접 전날 밤에 질문 리스트를 만들며 "좋은 개발자란 뭘까"를 고민하던 그 밤이 멀게 느껴졌다. 그렇게 고민해서 모신 사람들이 떠나는 걸 나는 남아서 지켜봤다.
전에는 일을 넘길 때마다 한 줄을 꼭 남기려 했다. "여기까지 봤고, 이건 아직 안 봤고, 나머지는 내일 아침에 내가 마무리하겠다"고. 일이란 건 끝내거나 분명히 넘기기 전까진 끝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름의 핸드오프 방식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넘길 동료가 없다. 핸드오프할 사람이 없으면 핸드오프의 기술도 의미가 없다. 모든 책임의 완료선을 나 혼자 긋고, 나 혼자 닫는다. 그게 혼자 남는다는 말의 진짜 무게였다.
여의도, 좁아진 자리
회사도 이사했다. 낙성대에서 두 개 층을 쓰던 우리는 여의도의 공용 오피스로 옮겼다.
자리가 좁아졌다. 예전엔 우리 회사만 쓰던 공간이었는데, 지금은 한 건물을 여러 회사가 학교 교실처럼 나눠 쓴다. 점심엔 어디든 줄이 길어서, 요즘은 거의 매일 편의점 도시락으로 때운다.
법인카드가 사라졌다. 매일 들르던 스타벅스도 이제 못 간다. 복지라고 부르던 것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반년 전 회고에서 나는 "찜질방에서 2시간 자는 건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고, 건강을 챙기겠다고 적었다. 지금은 삼각김밥 비닐을 뜯으며 그 다짐을 떠올린다.
좁아진 책상에 앉을 때마다, 회사 사정이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게 실감 난다.
그런데, 멈추지 않는다
이상한 건, 그 와중에도 일이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이 한다.
지금 백엔드 개발자는 세 명이 있다. 각자 맡은 피처가 있고, 나는 그 세 개에 각각 대응하며 프론트를 붙인다. 거기에 인프라며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요청들도 동시에 처리한다. 최소 네 개의 일이 항상 동시에 굴러간다.
반년 전이었으면 무너졌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두세 개를 병렬로 돌리는 것만으로도 스위치 오프가 안 됐다.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머리를 옮기는 데 한참이 걸렸고, 밤에 누워도 코드가 따라왔다.
지금은 네 개가 동시에 떠 있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 특별히 강해진 건 아니다. 하도 해서 몸에 뱄다. 그리고 혼자 남고 보니 AI에 더 의지하게 됐다. 사람이 줄어든 자리를 옆에서 맥락을 같이 들어주는 도구로 메운다.
지난달 손에 익힌 방식이 이번 달엔 구식이 된다. 따라가는 것까지가 일이 됐다. 혼자라, 같이 헤맬 사람도 없이.
코드를 디자인하는 사람
오해할까 봐 적는다. 나는 코드를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코드를 대하는 손이 달라졌다. 예전의 나는 한 글자 한 글자, 한 땀 한 땀 직접 짜는 사람이었다. 리액트 로직 하나하나에 집착했고, 그 디테일에서 보람을 느꼈다. 지금은 코드를 직접 박는다기보다, 코드를 디자인하는 사람에 가까워졌다. 어떤 구조로 갈지, 어디를 추상화하고 어디를 남길지, 무엇을 도구에 맡기고 무엇을 내가 쥘지를 정한다.
혼자가 되어 일을 떠안다 보니, 디테일을 하나하나 붙들 손이 모자랐다. 한 줄씩 박기 전에 전체 그림부터 잡지 않으면 일이 돌아가질 않았다. 나만 겪는 변화는 아니겠지만, 나한텐 거창한 시대 얘기라기보다 사람이 줄어 떠밀린 자리에 가까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선이 코드 안쪽에서 프로덕트 쪽으로 옮겨갔다. 요즘은 GSC, GA4, Whatap, Sentry를 예전보다 훨씬 자주 본다. MCP로 이 데이터들을 그때그때 끌어와 확인하는 게 습관이 됐다. 감으로 "이게 좋겠지"가 아니라, 숫자를 보고 움직인다.
예를 들어 SEO. URL 구조를 손보고, canonical을 정리하고, 구조화 데이터를 붙이는 작업을 꾸준히 했더니 검색 점수가 계속 올라간다. 얼마 전엔 GA4 채널에 'AI Assistant'라는 게 새로 잡히기 시작했다. ChatGPT나 Perplexity가 우리 글을 인용하면서 사람을 보내준다. 거의 0이던 게 한 달 만에 수천 명이 됐다. 코드 한 줄의 우아함으로는 안 보이던 것들이 데이터를 켜고 나니 보였다.
리액트 로직 한 줄에 집착하던 내가, 이젠 검색 유입 곡선부터 연다. 팀이 다섯일 땐 나눠 보던 숫자를, 이젠 혼자 다 본다. 달라진 게 좋아서라기보단, 그래야만 해서 달라진 쪽에 가깝다.
글쓰기는, 여전히 중요했다
반년 전 글에서 나는 이렇게 적었다. 예전엔 글을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젠 AI가 글을 잘 써준다. 그럼 뭐가 중요한가? 방향을 정하는 생각이다. 글쓰기 능력은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뉘앙스였다.
반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AI에게 방향을 주는 일, 그 자체가 결국 글쓰기였다. 무엇을 만들지, 왜 만들지, 어떤 맥락 위에서 판단해야 하는지를 정확한 문장으로 옮기지 못하면 AI는 엉뚱한 곳으로 간다. 좋은 결과는 좋은 질문에서 나오고, 좋은 질문은 결국 잘 쓴 글이다. 방향이 중요하다고 믿었던 그 말이 돌고 돌아 다시 글쓰기를 가리키고 있었다.
혼자 남고 나서 더 절실해졌다. 넘길 동료가 없어도, 미래의 나에게는 넘겨야 한다. 판단을 적어두지 않으면 두 달 뒤의 나는 왜 이렇게 짰는지 모른다. 일기에, 노트에, 커밋 메시지에, 나는 점점 더 많이 쓴다. 옆에 사람이 줄어들수록 글이 늘어난다.
이 회고도 그래서 쓴다. 잘 쓰는 게 안 중요하다던 내가, 다시 책상에 앉아 문장을 고치고 있다.
다섯에서 하나, 그다음은
3년차가 되며 느낀 것들을 적다 보니, 결국 빼기의 기록이 됐다. 팀이 줄고, 자리가 좁아지고, 복지가 사라지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이 떠났다. 무서운 반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빠진 자리만큼 다른 게 차올랐다. 혼자 네 개를 굴리는 체력이 붙었고, 데이터를 보는 눈이 생겼다. 코드를 디자인하는 손도, 자꾸 무언가를 쓰게 되는 버릇도. 빼기의 반년이었는데, 어딘가는 더해져 있었다.
다섯이 하나가 됐다. 그다음은 무엇일까. 끝일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의 시작일 수도 있다. 아직은 모른다. 다만 옆자리에서 소리 없이 울던 그 사람의 등이 자꾸 떠오른다. 나는 아직 그 자리에 남아 있다.
반년 뒤에 또 회고를 쓰게 된다면, 그땐 어떤 빼기와 더하기를 적게 될까. 그게 조금 두렵고, 조금 궁금하다.